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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는다/한국사

기출문제로 공부하는 필수 암기파트 고대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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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기>에서 제시된 인물의 공통점으로 가장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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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김운경 ㄴ. 최치원 ㄷ. 최언위 ㄹ. 최승우


① 고려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했다.
② 7세기와 8세기에 활약했던 신라의 대문장가이다.
③ 숙위 학생으로 당 황제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④당나라의 빈공과에 급제한 후 귀국하였다.

2. 신라 시대의 유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신문왕 대에는 국학을 태학으로 고치고, 박사와 조교를 두어 「논어」와 「효경」 등의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② 임신서기석을 보면 신라에서도 청소년이 유교 경전을 공부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③ 원성왕 대에는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는 독서삼품과를 마련하였다.
④ 최치원은 당나라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여 개혁안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3. 다음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춘추좌씨전」이나 「예기」나 「문선」을 읽어 그 뜻을 잘 통하고 「논어」·「 효경」에도 밝은 자를 상(上)으로 하고, 「곡례」 「논어」· 「효경」을 읽은 자를 중(中)으로 하고, 「곡례」 ·「효경」을 읽은 자를 하 (下)로 하되. 만일 5경 3사와 제자백가의 서(書)를 능히 겸통하는 자가 있으면 등급을 넘어 등용한다.

① 신문왕 때 처음 시행되었다.
② 6두품은 이 제도의 시행을 적극 지지하였다.
③ 학문과 유학을 널리 보급시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④ 골품 제도 때문에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4.다음 글은 최치원의 '난랑비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글에 포함되어 있는 사상과 관련이 있는 비문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못 백성들을 교화한다. 이를테면 들어와서는 집안에서 효를 행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사구의 가르침이고, 하였다고 자랑함이 없는 일을 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함은 주나라 주사(柱史)의 뜻이며,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의 교화이다.

| 보기 |
ㄱ. 사택지적비   ㄴ. 울진 봉평비  ㄷ. 임신서기석  ㄹ. 중원 고구려비


① ㄱ. ㄴ             ②ㄱ. ㄷ               ③ ㄴ, ㄹ            ④ ㄷ, ㄹ











정답 & 해설

1. 당의 빈공과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과거 시험으로, 신라의 6두품 출신의 유학자들이 많이 응시하였다.
김운경, 최치원, 최언위, 최승우모두 당에 유학한 도당 유학생 출신의 빈공과 합격자로 통일 신라 시대 대표적인 6두품 출신의 유학자들이다.

2.   경덕왕 때 국학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박사와 조교를 두고 유교 경전을 가르쳤으며 태학(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747).

3. 사료분석 제시문은 신라 하대 원성왕 때 시행되었던 독서삼품과에 대한 설명으로 상· 중· 하의 3등급으로 평가하고 유학 경전의 이해에 능통한 사람은 특품으로 채용한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통일신라  
국학(신문왕. 유학. 교육기관) → 태학(감) or 대학감(경덕왕, 박사와 조교 두어 논어와 효경등 유교 경전 교육)→ 국학(혜공왕) )이하
독서삼품과(788, 원성왕)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 채용, 국학 졸업 시험, 3등급(상·중·하품)+실력기준
진골 귀족의 반발로 실패 but 학문 유학 보급에 이바지


4. 사료분석 - 제시문은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으로 화랑이 연마한 풍류도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풍류도를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사상으로 설명함으로써 세가르침이 서로 일치한다는 삼교 회통 사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나라 사구'의 가르침은 유교를 의미하며 '주나라 주사'의 뜻은 도교, '축건태자의 교화'는 불교를 의미한다.
. 사택지적비백제 대좌평을 역임하였던 사택지적이 세운 비문으로 지난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불교에 귀의하고 원찰을 건립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장 사상이 반영된 문장 표현으로 도교 사상 역시 반영되어 있다. 사륙변려체의 유려한 문장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양순체의 서체로 쓰여져 백제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 준다.
. 임신서기석신라의 두 화랑이 유교 경전의 학습과 인격 도야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당의 빈공과에 합격하여 관직을 지내다 885년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진성여왕에게 사회 개혁을 위한 시무책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그러나 진골 귀족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은둔하여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

최치원의 저술
시문집 「계원필경」(현존), 「금체시」 「오언칠언금체시」, 「잡시부」 「중산복궤집」, 「사륙집」 등
역사서「제왕연대력」  
불교관련저서「부석존자전」,「법장화상전」(현존), 「석이정전」, 「석순응전」, 「사산비명」(현존)  
기타 「동문선」에 시문과 사기(寺記) 등이 전해짐







출처- 전한길 한국사 기출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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