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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는다/한국사

한국사능력시험 심화 52회 오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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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2C -위만
중국 진· 한 교체기 무렵에 건너옴 → 국경 수비 대장(박사로 임명) → 세력을 키워 준왕 축출→ 위만 조선 성립(B.C. 194)
중앙 정치 조직을 갖춘 강력한 국가로 성장 - 관직 정비 : 왕 · 태자 · 비왕 · 상 · 대신 · 경 · 장군 등 사용
- 성장 과정에서 진번 임둔 등 주변 지역 복속


642 [고구려] 연개소문 정변: 영류왕 사망 → 보장왕 추대, 스스로 대막리지가 됨
660~663 (백제)부흥 운동 복신·도침(주류성 충남한산) / 흑치상지 · 지수신(임존정, 충남예산) + 왕자 부여풍 + 日 수군의 지원 :백(촌)강 전투(663)
7C -보장왕 - 中 당 태종 침입 ↔ 안시성 전투(645, 양만춘), 천리장성 완성(647), 연개소문 사망 후 아들 내분 - 연정토 신라(문무왕) 귀순(666) , 연남생 당에 귀순(666)
- 고구려 멸망 668) ↔ [신라] 문무왕

고려의 사회
사회제도 - 동서대비원(개경, 환자진료, 빈민 구휼), 혜민국(개경, 의약 담당)
only 고려 : 구제도감,구급도감(임시기구,각종 재해발생시 치료· 구제) / 제위보(기금마련 후 그 이자로 빈민 구제)

ㄱ. 조선 명종 때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구황촬요"를 간행·보급하였어요.
ㄷ. 조선 고종 때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호조에서 정한 사창절목에 따라 사창제가실시되었어요.
출처-위키백과

역사서 - 15C - [ 고려사 ](김종서 · 정인지) - 세종 ~문종 완성, 기전체, 정도전의 [ 고려국사 ]를 모델로 편찬
- 명분론 반영(세가-지 -연표 열전) VS 고려 역사 자주적 정리('종' · '태자' · '태후' 칭호)

대개 지난 시기 흥망이 앞날의 교훈이 되기에 이 역사책을 편찬하여 올리는 바입니다.
‥‥‥ 이 책을 편찬하면서 범례는 사마천의 "사기"에 따랐고, 기본 방향은 직접 왕에게 물어서 결정했습니다. '본기'라고 하지 않고 '세가'라고 한 것은 대의명분의 중요함을 보인 것입니다. 신우, 신창 을 '세가'에 넣지 않고 '열전'으로 내려놓은 것은 왕위를 도적질한 사실을 엄히 밝히려 한 것입니다. 충신과 간신, 부정한 자와 공정한 자를 다 '열전'을 달리해 서술했습니다. 제도 문물은 종류에 따라 나눠 놓았습니다. - "고려사" -

태종 (이방원) (1400~1418)

6조 직계제 실시, 의금부· 승정원 설치 → 왕권 강화
사간원 독립(대신 견제), 외척(처남 민무구· 민무질) 숙청 ,창덕궁 건립(이궁 건립으로 양궐 체제 성립)
사병을 혁파하여 의흥삼군부 편입(정종 재위 시기에 이방원 주도) → 군권장악, 사원의 토지 몰수

"짐이 일찍이 송도에 있을 때 의정부를 없애자는 의논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겨를이 없었다. 지난 겨울에 대간에서 의정부를 없앨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는데, 좌정승이, '중국에도 승상부가 없으니 의정부를 폐지해야 한다. '라고 건의하였다. 짐이 골똘히 생각해 보니, 모든 일이 짐 한 몸에 모이면 결재하기가 힘은 들겠지만, 임금이 어찌 고생스러움을 피 하겠는가." …(중략)…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이 제도를 단행하니, 의정부가 관장하는 것은 오직 사대문서(事大文書)와 중죄인을 다시 심사하는 것 뿐이었다. -"태종실록"-


중종 (1506~1544)
조광조의 개혁 정치 - 훈구파의 위훈(거짓 공훈) 삭제 주장,현량과(천거 관리 등용) 실시 → 사림 등용 목적 [ 훈구파 반발 -남곤·심정 주도의 주초위왕(走肖為王) 사건]
기묘사화 (1519):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에 대한 훈구 세력의 반발(走肖為王)

인종 (1544 ~ 1545) 母 장경왕후 윤씨 [ 대윤, 윤임 일파 ] → 일찍 사망
명종 (1545 ~ 1567) 母 문정왕후 윤씨(여인천하) (1545~1567) [ 소윤, 윤원형 일파 ]
→ 을사사화 (1545)
원인 - 외척 간의 갈등 / 결과 - 척신들이 정국 운영 주도 > 양재역 벽서 사건(1547) - 내용 : 여인천하 → 국망(國亡) / 결과: 대윤 추가숙청

선조 16C 말 (1567~1608)
사림 집권 → 붕당(사림 ↔ 사림) 발생

동인, 서인의 분당(을해당론)
김효원이 알성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이조) 전랑의 물망에 올랐으나, 그가 윤원형의 문객이었다하여 심의겸이 반대하였다. 그 후에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장원 급제하여 전랑으로 천거되었으나, 외척이라 하여 효원이 반대하였다. 이때, 양편 친지들이 각기 다른 주장을 내세우면서 서로 배척하여 동인, 서인의 말이 여기서 비롯하였다. - "연려실기술" -
  • 김효원, 심의겸, 이조전랑

심의겸을 비롯한 기성 사림(서인)은 훈구 세력의 포용을 주장한 반면, 김효원을 비롯한 신진 사림(동인)은 훈구 세력의 척결을 주장하였다.




신해박해(1791, 정조): 진산 사건(권상연 · 윤지충 모친상 당해서 신주 불사름) > only 둘만 희생 o (대대적 박해 X), 이승훈 투옥 →을묘실포사건(1795)으로 예산 유배

천주교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바입니 다. 살아 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과 밥을 받아먹을 수 없거늘, 하물며 죽은 뒤에 영혼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 하는 것이요, 도리와 덕행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어찌 허위와 가식의 예로써 이미 돌아간 부모를 섬기겠습니까?
- 정하상, "상재상서" -
상재상서(정하상) - 천주교는 조상에 대한 유교의 제사 의식을 거부하였으므로, 정조는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였다.


이황 (퇴계) - 도산서원(안동), 영남학파 ex) 김성일 · 유성룡 → 위정척사 사상에 영향, 日 성리학에 영향
- 동인 → 영남 남인, 이언적 사상 계승 → 主理論
- 도덕적 행위의 근거로 인간의 심성 중시, 근본적이며 이상주의적 성격 강함
- 이기이원론, 선조 즉위 직후 바친 글 [ 성학 십도 ] > "군주 스스로"

후세 임금들은 천명을 받아 임금의 자리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무겁고 지극히 크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는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 바라옵건대 밝으신 임금께서는 이러한 이치를 깊이 살피시어, 먼저 뜻을 세워 "노력하면 나도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하십시오.
-「성학십도」-

탕평 정치 - 영조 (1724~1776)

- 균역법(1750): 농민에게 군포 1필(← 2필) 징수
- 「속대전」(법전) 편찬, 신문고 부활
- 사형삼심제, 가혹한 형벌 개선 ex) 압슬형, 낙형 금지
- 일천즉천 → (노비)종모법(1731) 양인 증가책(엄마 "양인" -> 자식 "양인"), 노비공감법(1755)
- 청계천 정비(준천사설치), 군영 정비(수성윤음 발표, 훈련도감 · 어영청 · 금위영 중심의 도성 방어 체제)

균역법 실시
영조 26년 7월 기유 양역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명하였다. "구전은 한 집안에서 거둘 때 주인과 노비의 명분이 문란해진다. 결포는 정해진 세율이 있어 더 부과하기가 어렵다. …(중략)… 호포나 결포는 모두 문제되는 바가 있다. 이제는 1필로 줄이도록 하고 ❷ 감소된 액수를 채울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 "영조실록" -

영조, 양역을 절반으로 경감
❶ 균역법의 시행으로 군포의 부담이 1필로 경감되었다.
❷ 토지 1결당 미곡 2두를 결작으로 걷고,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고 군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으며(선무군관 포), 어염세· 선박세 등 왕실의 잡세 수입을 균역청에서 관할하게 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정치 - 통상수교거부
1871. 신미양요(미-로저스) 강화도[초지진 → 덕진진 → 광성진(보)] →어재연→ 수(飾)자기약탈
강화도 조약 - 1876. 2月. (병자 수호 조약, 조일 수호 조규)
배경 - 타율적: 운요호 사건(1875, 강화도 초지진 → 영종도, 포함 외교)
- 자율적: 통상개화론자 ex)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유대치)


1894 동학 농민 운동 , 갑오개혁, 청일전쟁
청일 전쟁 日 승리(1895) 후 시모노세키 조약(1895. 3.) -> 삼국 간섭[ 러.프.독] (1895. 3.) →결과: 요동반도 반환
아관 파천 (1896) 후: 서구 열강의 이권 침탈 본격화 - ) 압록강· 두만강 삼림 채벌권, 울릉도 삼림 채벌권, 경원 · 종성 광산 채굴권/ 미 ) 운산(평안도) 금광, 수도· 전차 ·전기 부설권, 경인선 부설권 / 독 ) 당현(강원도) 금광 / 영 ) 은산(평안도) 금광 / 프 ) 경의선 부설권 / 日 ) 직산(충청도) 금광, 경부선 · 경원선 부설권

갑오개혁 (1894, 제도적 근대화)

2차 전개 과정 - 우금치 전투 日 승리 후 군국기무처 폐지, 흥선 대원군 축출, 고종의 친정
- 이노우에 공사의 주도로 日에서 박영효 · 서광범 귀국 후 제2차 김홍집 · 박영효 연립 내각(친일)
개혁 내용 - [정치] 의정부 → 내각, 8아문 -> 7부, 8도 → 23부, 근대적 재판소 설치(법관 양성소)
교육입국. 조서 반포(1895. 2) → 관립 학교 多 ex ) 소학교, 중학교, 사법학교, 외국어학교
경제 : 탁지부 산하에 관세사 · 징세서 설치, 내장원 설치
군제: 훈련대 · 시위대 설치

을사조약(1905. 11)
제2조 일본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하는 책임을 맡고, ❶ 한국 정부는 금후에 일본 정부의 중재를 거치지 아니하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맺지 않을 것을 서로 약속함.
제3조 일본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❷ 황제 폐하의 밑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경성에 주재하고 친히 한국 황제 폐하를 알현할 권리를 가짐.

❶ 일본의 승인 없이는 대한제국은 어느 나라와도 교섭할 수 없게 되었다. ❷ 일제는 1906년 2월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임명하였다.


을사늑약 반대 투쟁

국제 협력 요청 1905. 12. 미) 대통령에게 특사 파견 (헐버트) → 미) 의 외면← 1907. 4. 헤이그 특사 파견(이준, 이상설, 이위종 + 헐버트)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활동 - 군자금 모금: 애국(독립) 공채 발행, 이름양행(1919. 5. 설립,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 백산 상회(1914년 설립, 부산, 안희제)
독립 의식 고취 - 사료 편찬소(「한일 관계 사료집」간행) → 이를 참고하여 박은식이「한국독립운동지혈사」지음(1920)

3·1 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
만세 시위가 확산되자, 일제는 헌병 경찰은 물론이고 군인까지 긴급 출동시켜 시위 군중을 무차별 살상하였다.
정주, 사천, 맹산, 수안, 남원, 합천 등지에서는 일본 군경의 총격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화성 제암리에서는 전 주민을 교회에 집합, 감금하고 불을 질러 학살하였다.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화성 제암리 사건 : 주민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 사격함, 농촌으로 확산된 만세 운동에 대한 강경 대응 → 국제 여론 악화

천도교 : 제2의 3· 1 운동 계획, 잡지 「개벽」(1920~1926) 「신여성」 · 「어린이」 간행

소년 운동
어린이는 어른보다 새로운 사람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하고 자기의 물건같이 여기지 말고 … 자기 마음대로 굴리려 하지 말고, 반드시 어린 사람의 뜻을 존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 방정환, 「어린이날의 약속」 1923. 5. 1 -

소년 운동 : 천도교 소년회 - '어린이' 용어 사용, 잡지 「어린이」 간행, 어린이날 제정(1922, 방정환)



1938's 민족 말살 통치

국가 총동원법(1938)
제4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한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제8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한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물자의 생산 수리 배급 양도 및 기타의 처분, 사용 소비 소지 및 이동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 "조선 법령 집람" 제13집 -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법을 제정하여 인적· 물적 수탈을 강화하였다.
그 후 국민징용령(1939), 물자통제령(1941), 금속류회수령(1941), 식량관리령(1943) 등의 후속 법령을 잇달아 제정하였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독립 운동 단체로 간주하고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를 적용하여 탄압하였다 (조선어학회 사건, 1942)



이동휘
- 강화도에서 보창학교 설립
- 신민회 참여
- 강화 진위대장 사임 후 정미의병 참여
- 대한 광복군 정부 부통령
- 한인 사회당(1918, 러시아)
- 대한 국민 의회 주도
- 임시 정부 초대 국무총리
- 고려 공산당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국외 이주 동포들의 시련
연해주 : 자유시 참변(1921) ,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 1937)


( 가 ) 1920년대 무장 독립 전쟁
봉오동전투
6월 7일 상오 7시 북간도에 주둔한 아군 7백은 북로 사령부 소재인 왕청현 봉오동을 향하여 행군하다가 뜻하지 않게 같은 곳을 향하는 적군 3백을 발견하였다. 아군을 지휘하던 홍범도, 최진 동 두 장군은 즉시 적을 공격하였다. 급사격으로 적 1백 20여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하고 도주하는 적을 즉시 추격하여 현재 전투 중에 있다. - 독립신문-
봉오동 전투 (1920.6.) : 대한 독립군 ( 홍범도 ) + 국민회군 ( 안무 ) + 군무도독부 ( 최진동 )

② 경신참변 ( 간도참변, 1920. 10)
① 자유시 참변 (1921. 7) - 소련 적색군의 배신으로 희생, 독립군 내부 분열
3부 성립 - 만주 지역에 만들어진 자치 정부 ex ) 민정기관 (정치) + 군정 기관 (군수) /
참의부 (1923, 임정 직속), 정의부 (1924, 지청천 · 양기탁), 신민부 (1925, 김좌진, 대종교 주축) → 각각 행정 · 입법 · 사법부 구성 / 국내 침투 작전 전개
③ 청산리 대첩 (1920. 10) - 대한 독립군( 홍범도) + 북로 군정서 ( 김좌진) , 전투 : 백운평, 천수평, 고동하, 어랑촌 전투
④ 미쓰야 협정 (1925) 만주 지역 內 우리 독립군 탄압 / 日미쓰야 - 만주 군벌(만주국X)

( 나 ) 조선혁명군 + 중국의용군 -> 영릉가 전투 ( 1932 ), 흥경성 전투(1933)

1939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피선되었다. 그 해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시안[西安]에 파견되어 중국정부와 협의해 한국광복군 창설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성환(曺成煥))]

임정 강화(1940's, 충칭) - 1940. 9 [ 한국광복군 ] - 충칭, 임시 정부 정규군 / 총사령관: 지청천(=이청천) + 부사령관: 김원봉 + 참모장: 이범석
선전 포고 : 동맹국 (추축국) → 대일 . 대독 선전 포고(1941. 12) / 연합 - 中 한중 연합 작전 ,영 ) 미얀마 . 인도 전선에 참전(1943), 미) OSS(미국 전략 정보부, CIA 전신) 지원
비행대 편성 , 국내 정진군 편성 → 국내 침투 작전 계획 → 실행X

마산, 서울, 기타 각지 학생 데모는 주권을 빼앗긴 국민의 울분을 대신하여 궐기한 학생들의 순진한 정의감의 발로이며 불의에는 언제나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이다.
- 대학교수단 시국 선언문, 1960. 4. 25. -



마산 의거(3. 15.) → 김주열 시신 발견(4. 11.) → 고려대 학생 시위(4. 18.) → 서울대 학생과 시민의 대규모 시위(4· 19 혁명) → 계엄 선포(4. 19.) → 장면 사임 후 이승만 하야 요구(4. 23.) → 대학교수 시위(4. 25.) → 이승만 하야(4. 26.)

3차 개헌(1960. 6. 15.) - 허정 과도 내각에서 시행

김대중 정부 : IMF 극복 노력(2001) - 금모으기 운동 ( 1998. 1 ~ ) , 노사정 위원회 발족 (1998. 1 ~ ) , 신자유주의 경제 원칙 -> 금융.투자 개방


(가) 통일노력 : 남북 UN 동시 가입( 1991. 9) - 노태우 정부
(나)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가입(1996) - 김영삼 정부
(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 이명박 정부









해설출처 - 전한길필기노트, 포켓키워드 사료집, 고종훈사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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