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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는다/한국사

한능검 대비 유물 유적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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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불상
1 불상 :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삼국 공통 제작)

출처- 위키백과 
고구려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
국보 제119호
북조영향

백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에 위치 /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삼존상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 1962년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었다.

[ 남조영향, 백제의 미소 ]

신라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1963년 보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 베리 석불 입상 ]

통일신라

중대
경주 석굴암 본존불 , 보살상
[ 불교의 이상 세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 ] ,
사천왕상 (7세기 나 . 당 전쟁 승리와 왜구 격퇴 염원)
하대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5년(865)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신라말에서 고려 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불상은 그 전형으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까지도 철로 만들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다. 1962년 국보 제63호로 지정되었다.

[ 철조 비로자나불 제작 ( 철원 도피안사 , 장흥 보람사 ), 마애석불 유행

출처- https://www.artofit.org/image
발해

동경 팔련성 이불 병좌상 ( 전불, 현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고려의 불상
특징 - 대형 불상 제작 , 조형미 후퇴, 자유분방한 면

대형 석불상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의 극락전에 건립된 불상이다. 태조가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개태사를 창건할 때 조성되어 940년(태조 23)에 완공되었다. 중앙의 본존불(높이 4.15m)과 좌협시 보살상(높이 3.53m), 우협시 보살상(높이 3.46m)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상은 짧은 코와 인중, 미소 띤 입, 넓은 뺨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나말여초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63년 보물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위치한 고려 시대 석불 입상이다. 자연석 벽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각하였다. 후사가 없었던 고려 선종(재위 1083~1094)이 후비 원신궁주의 꿈에서 본 두 승려를 돌에 새기고 절을 짓자 왕자 한산후가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1963년 보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 형식면에서의 다양함 + 향토적 특색 ]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상반신

11세기 고려 석불인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5호)의 정면 사진이다. 자연석에 몸통을 새기고, 그 위에 따로 제작한 머리를 얹었다. (한능검 심화 55회 출제)


소조 불상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부석사 무량수전에 안치된 고려 초기 불상이다. 불상을 모신 장소가 극락전이라는 점을 보아 아미타불상으로 추정된다. 1962년 국보 제45호로 지정되었다.

[ 제작 수법 면에서의 다양함 ]

고대의 학문과 사상 및 종교

1 고대 교육 기관


고구려 / 교육 기관 및 제도 - 태학 ( 소수림왕 ) / 대상 - 중앙(국립), 귀족 자제만 입학 / 교육 내용 - 유교 경전 , 역사서 교육
경당( 장수왕 추정) / 지방(사립) , 평민 자제까지 입학 가능 / 한학, 무술 교육
백제 / 전하는 교육 없음 > 지방에 5경 박사 , 의박사 , 역박사 파견 / 유학, 기술학 등
신라 / 화랑도 / 진골 귀족부터 평민 자제까지 / 경학, 무술 교육
통일신라 / 국학 (신문왕) > 태학감 ( 경덕왕 ) / 귀족자제 (15세 ~ 30세 대사 이하 관등 없는 자 > 주로 6두품 출신) , 예부 소속 ( 수업연한 : 9년) / 논어 효경(필수과목) 등 유교 경전
독서삼품과( 원성왕 ) / 국학 졸업 시험의 성격 > 진골 귀족의 반발로 본래 목적 달성 실패 / 유교 경전 (3품으로 평가 + 특품 有), 효경만 필수 과목
발해 / 주자감 (문왕) / 왕족 . 귀족 자제 / 유학

2 역사서 및 유학 보급

고구려 [유기] 100권 ( 국초, 작자미상) > 이문진의 [신집] 5권 ( 영양왕 11년, 600)
백제 고흥의 [서기] ( 근초고왕 대) : 현존 X
신라 거칠부의 [국사] (진흥왕 6년 , 545년 ) : 모두 현존 X

통일 신라
중대 - 강수 : 불교를 ' 세외교' 라 비판(6두품) , 외교 문서에 능함 ( 답설인귀서 ) 및 ( 청방인문표 )
설총 : 원효아들 (6두품), 이두 정리, [화왕계] ( 신문왕에게 유교 정치 권장)
김대문 : 성덕왕 대 진골 출신 자주적 문장가
> [ 화랑세기 , 고승전, 한산기, 악본, 계림잡전 ] 저술 : 모두 현존 X

하대 - 최치원 : [ 계원필경 ] ( 현존 가장 오래된 문집) , [ 토황소격문 ] , ' 4산 비명' : 현존 O
[ 제왕연대력] ,[ 시무 10조] ( 과거제 실시 주장 개혁안 ) : 현존 X

- 4산 비명 : 대승복사비 ,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3 불교 사상의 발달


1 삼국시대 불교

수용 고구려 - 전진순도 (372) / 백제 - 동진 마라난타( 384) / 신라 - 전래 고구려 묵호자 (457) , 공인 이차돈 순교 (527)
종파 고구려- 삼론종 ( 승랑) / 백제 - 율종 ( 겸익) / 신라 - 계율종 ( 자장)
공통점 미륵신앙 유행 >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 삼국 공통 제작)
왕실과 귀족 중심 불교 , 토착 신앙과 결합
역할 새로운 국가 정신 확립에 기여 > 원광의 세속 5계 ( 진평왕) / 왕권 강화에 기여 > 불교식 왕명 사용 ( 법흥왕 ~ 진덕여왕 ) / 호국 사상 보급에 기여 > 황룡사 9층 목탑( 선덕 여왕 ) , 백좌강화 ( 국가 안녕 기원)

신라 불교의 특징
업설 : 행실에 따른 업보 강조 > 지배층의 지배 정당화
미륵신앙 : 미륵불이 이상적 불국토를 건설한다( 화랑도와 관련)
교단 정비 : 국통, 주통, 군통( 고구려 승려 혜량을 국통으로 임명 )
밀교 유행 : 외적 격퇴나 질병 치료 등에 밀교 의식 거행 (밀본)

2 통일 신라 불교

원효
(617 -686)
6두품 출신, 파계 후 요석공주와 결혼 > 설총(子) 출생> '소성거사'라 자처
중관과 유식의 통합 : 일심( 一心 ) 사상 > [십문화쟁론] > 화쟁 사상 ( 원융회통 사상)
불교의 대중화 : 무애(행) 강조 > 정토 신앙 ( 아미타 신앙) 보급
법성종( 해동종 ) 창시 : 분황사 창시 ( 5교 중 하나)
주요 저서 : [ 대승기신론소], [ 금강삼매경론] , [화엄경소]
의상 (625-702)
진골출신 , 당에 유학 ( 지엄 문하에서 수학)
화엄사상 정립 : 일즉다 다즉일( 원융사상) + 왕즉불 사상 ( 업설을 바탕 ) > 전제 왕권 강화에 기여
화엄종 개창 : 부석사 (영주) ,낙산사(양양) 중심
불교 대중화 : 관음 신앙 ( 현세 구복 )+ (아)미타 신앙 (내세 신앙)
민생 안정책 : 문무왕에게 민심의 성을 쌓을 것 강조
주요 저서 : [ 화엄일승법계도]
원측 (613-696)
현장의 제자 (유식 불교) > 서명학파
당의 서명사에서 현장의 사상을 계승한 규가와 논쟁 > 교리 우위성 과시
주요 저서 : [ 해심밀경소 ]
혜초 (704-787) 당을 통해 인도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아라비아, 서역까지 가서 성지 순례
> [ 왕오천축국전] 저술 (1908년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가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 > 현재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 중)
김교각 (696 - 794)
신라의 왕손 ( 성덕왕의 아들로 추정)
24세에 당에 건너가 출가하여 99세에 구화산에서 입적 >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음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시기의 향로이다. 높이 61.8㎝, 지름 19cm, 무게 11.8㎏의 대형 향로이다. 중국 한대 이후 박산향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중국과 달리 산들이 입체적이며 세부의 동물과 인물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백제인의 창의성과 뛰어난 조형성을 바탕으로 당시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 공예기술 및 미술 문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백제 금속 공예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다.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1996년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1) 서울 석촌동 돌무지무덤 1호분
석촌동 1호분은 남분과 북분이 결합된 쌍분으로 규모는 22.3×12.8×1m인데, 북분의 경우 상부구조가 완전히 파괴되어 정확한 구조를 밝히기 어렵지만, 방형의 석축을 쌓고 그 내부를 점토로 채운 형태이다. 남분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적석묘로, 역시 상부가 파괴되어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없지만, 잔존 석축 내부에서 석곽 4기가 조사되었다.

2) 서울 석촌동 돌무지무덤 2호분
석촌동 2호분은 4호분 남쪽에 위치하며, 규모는 17.4×16.2×3.8m이고 석축을 축조하면서 점토로 채운 내부에서는 목관 1개가 조사되었다.

3) 서울 석촌동 돌무지무덤 3, 4호분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한성기 백제의 적석총이다. 3호분은 석촌동에 분포하는 적석총 중 가장 큰 규모로, 동서 50.8m, 남북 48.5m이며 상부 구조는 파괴가 극심하여 분명치는 않지만 7단 정도의 계단을 갖춘 적석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호분은 3호분의 남쪽 80m 지점에 있다. 계단적석총으로, 한 변의 길이가 30m 정도인 평면 방형에 3단으로 축조된 피라미드 모양이다.

공주 무령왕릉

공주시 금성동 송산에 위치한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3) 부부의 무덤이다. 지석에 기록된 ‘백제사마왕(百濟斯麻王)’이란 명문에 의해 이 무덤이 무령왕릉임을 알게 되었다. 왕릉은 경사진 산비탈을 파고 그 속에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봉분은 지름 20m 내외이며, 높이는 7.7m이다. 축조 당시에도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봉토는 무덤 주위의 풍화암반층을 편평하게 깎아낸 다음 석회를 섞은 흙으로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들었다. 봉토의 동남쪽에서는 봉토의 유실을 막기 위하여 잡석을 4~5단 쌓아 올린 호석이 드러났다.

공주 무령왕릉 내부

무령왕릉의 매장주체부는 장방형의 현실에 연도를 갖춘 전축묘이다. 현실은 남북 420㎝, 동서 272㎝, 높이 314㎝이다. 네 벽 가운데 남북벽은 비교적 반듯하게 쌓아 올렸고, 동·서벽은 차츰 안으로 기울여 쌓아 터널처럼 만들었다. 벽돌 표면에는 아름다운 연꽃과 인동초무늬를 올록볼록 장식하였다. 벽돌은 두 가지 방법으로 겹겹이 쌓았는데, 1줄은 세워서 쌓고 그 위의 다른 1줄은 벽돌 4장씩을 뉘어서 쌓음으로써 견고함을 더하였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 능산리 산의 남쪽 경사면에 있는 백제 무덤들이다. 총 7기로,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 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능산리 무덤들은 일찍이 도굴되어 두개골 파편·도칠목관편·금동투조식금구·금동화형좌금구 등 약간의 유물만 수습되었다. 무덤들 서쪽에서는 절터가 발굴되어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능산리 무덤들이 왕실 무덤 지역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1963년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

경주 김유신묘
경주시 충효동에 위치한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무덤이다. 무덤은 원형의 봉토분으로, 봉분의 주위에 호석(護石)을 두르고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이러한 무덤 양식은 통일신라 무덤의 특징으로, 성덕왕릉에서부터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이 김유신의 장례를 치르면서 기공비(紀功碑)를 세우게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유신은 흥덕왕 때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이때 왕릉의 예로 무덤을 조성하면서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1963년 사적 제21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문무대왕릉 내부

대왕암의 구조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를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데, 문무왕의 유골을 이 돌 밑에 어떤 장치를 해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떤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안쪽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이 확인되어 이곳을 기록에 나타나는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추정한다.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

고려 중기 승려 지눌(知訥)의 초상화이다. 가로 111cm, 세로 183cm이며, 비단에 채색하였다. 대구 동화사 사명당 유정 진영(보물 제1505호)과 화풍이 유사하여 동일 시기인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 송광사 및 여수 흥국사에 봉안된 보조국사 진영과 동일한 원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그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그림 왼쪽에 지눌이 입적한 후 받은 시호인 ‘願力受生海東佛日普照國師(원력수생해동불일보조국사)’가 쓰여 있다. 2010년 보물 제1639호로 지정되었다.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1805년(순조 5)에 승려 화가 도일비구(道日比丘)가 수정, 보완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초상화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110.2cm, 세로 144cm이며, 비단에 채색하였다. 좌측 상단에 승려 혜근(惠勤)의 글이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90년 보물 제1044호로 지정되었다.







이미지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자료 출처 간편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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