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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는다/한국사

한국사 기출문제 [ 고려의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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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와 관련된 고려 정부의 대응으로 가장 옳은 것은?

최충이 후진들을 모아 열심히 교육하니, 유생과 평민이 그의 집과 마을에 차고 넘치게 되었다.
마침내 9재로 나누었다. …… 이를 시중 최공의 도라고 불렀다.
의관자제로서 과거에 응시하려는 자들은 반드시 먼저 이 도에 속하여 공부하였다. ……
세상에서 12도라고 일컬었는데, 최충의 도가 가장 성하였다.


① 원으로부터 성리학을 수용하였다.
          ② 「주자가레」와 「소학」을 널리 보급하였다.
       ③ 국학에 처음으로 양현고를 설치하였다.
               ④ 만권당을 짓고 유명한 학자들을 초청하였다.










예종은 국학에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하여 관학을 진흥 시키고자 하였다(1119)






사학 12도
고려 시대 개경에 있던 열두 사학을 일컫는 말이다.
최충의 문헌공도, 정배걸의 홍문공도, 노단의 광헌공도, 김상빈의 남산도, 김무체의 서원도, 은정의 문충공도, 김의진의 양신공도,
황영의 정경공도, 유감의 충평공도, 문정의 정헌 공도, 서석의 서시랑도, 귀산도 등이다.


다음 내용이 실린 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는 하늘의 명령과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서 반드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으니,
그런 뒤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서 제왕의 지위를 얻고 대업을 이루었다. ……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이(神異)한 일로 탄생했음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것이 책 첫머리에 기이(紀異) 편이 실린 까닭이며, 그 의도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① 불교 승려의 전기를 수록한 고승전이다.
    ② 불교 중심의 고대 민간 설화를 수록하였다.
         ③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④ 유교적 사관에 기초하여 기전체로 서술하였다.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충렬왕때 승려였던 일연이 고조선 부터 후삼국까지의 역사와 불교사, 고대 민간 설화, 야사 등의배용을 편찬한 역사서이다. 몽골과의 항쟁과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민족적 자주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잘 나타나 있고, 특히 단군의 건국이야기와 고조선 역사를서술하고 있다.








다음과 관련된 역사서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고려는 후기에 오랜 기간 동안 몽골의 침략을 당하고, 이어 원의 간섭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민족적 자주 의식을 바탕으로 전통문화를 이해하려는 역사서가 나타났다.


① 「제왕운기」  ② 「동명왕편」   ③ 「해동역사」  ④ 「해동고승전」




「해동역사」는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한치윤이 단군 조선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사실을 기전체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고려의 역사서

고려초기  
「고려왕조실록」: 현존x
「7대 실록」: 현존x

고려중기
박인량의 「고금록」: 삼국 시대 역사 기록  
김부식의 「삼국사기」 :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
김관의의 「편년통록」: 현존 x, 태조 왕건의 6대조 찬양

고려후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고구려 계승 의식
각훈의 「해동고승전」 : 삼국에서 고려의 승려기록
일연의 「삼국유사」 : 단군 신화 기록
이승휴의 「제왕운기」: 우리 역사를 중국 역사와 대등하게 파악

고려말
이제현의 「사략」 : 성리학적 유교 사관 → 현재「사략」의 사론만 전함




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는 송악산 아래의 자하동에 학당을 마련하여 낙성(樂聖), 대중 (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조도(造道), 솔성(率性), 진덕(進 德), 대화(大和), 대빙(待聘) 등의 9재(齋)로 나누고 각각 전문 강좌를 개설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과거 보려는 자제들은 반드시 먼저 그의 학도로 입학하여 공부하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



① 9경과 3사를 중심으로 교육하였다.
②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③ 유교 사상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 시무 28조의 개혁안을 올렸다.
④「소학」과 「주자가례」를 중시하고 권문세족과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해동공자'라 불렸던 최충은 고려의 유학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고, 9재 학당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던 인물이다.
     9재 학당의 교과서는 9경 3사였는데, 9경(九經-「주역」 「서경」, 「시경」, 「의례」, 「주례」, 「예기」, 「춘추좌씨전」, 「공양전」)
     3사(三史 -「사기」, 「한서」, 「우한서」 )를 중심으로 과거 시험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서적에 관한 설명 중 옳은 것은?
① 숙종 때 서긍은 「고려도경」을 저술하였다.
② 예종 때 홍관은 「속편년통재」를 편찬하였다.
③ 인종 때 우리나라 풍수지리서의 각종 비록들을 모은 「해동비록」 이 편찬되었다.
④ 충렬왕 때 민지는 「본조편년강목」을 편찬하였다.



「속편년통재」는 고려 예종 11년(1116)에 홍관이 왕명에 따라 펴낸 사서로 편년체로 되어 있으며 삼한 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의 사적을수록하였다.
    「편년통재속편」이라고도 한다.




강목체(綱目體)
역사 서술 방식 중의 하나로 역사를 연 · 월 · 일순에 따라 강(綱)과 목(目) 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제이다.
강목체의 시원을 공자에게서 보기도 하지만 강목체는 주희(朱嘉)에 의해 체계가 잡혔다.
주희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자료로 이용하여 「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하였다.
정통 · 대의명분 등 성리학적 유교 도덕에 부합하는 것들을 강으로 설정하고, 부차적인 내용 또는 구체적인 사실 등을 목으로 설정하여 서술하는 것으로
저자의 역사 적가치평가를 담고 있다.









출처 - 전한길 한국사 3.0 기출문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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